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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역사 이야기

중세시대 기사들의 체육활동

by 라떼몽몽몽 202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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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서임

유럽은 4세기 부터 600년 동안 전쟁이 끊이지 않으며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이 기간동안 무력을 지닌 강자들이 약자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사상 및 종교적으로는 유럽 전역에 기독교주의가 퍼져 있었다. 금욕을 강조했던 기독교 사상 아래에서 수도원의 교육에서 체육은 배제되었다. 체육의 부정적 요소를 크게 여겼으며, 각종 놀이 및 오락도 금기시 되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중세는 체육의 암흑기라 불린다. 그러나 중세 사회에서도 체육활동이 허용된 곳이 있었는데, 바로 기사 교육 체계이다.
 
기사 교육의 뿌리는 중세 봉건 사회의 사회적, 도덕적 관례를 엄수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기사도 교육이었으며, 7~21세 청년들에게 체계적 기사 교육이 실시되었다. 7~14세까지는 1단계인 시동기, 15~21세는 종사기인 2단계로 구분되었다. 시동기의 소년은 사제, 성직자, 귀부인으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며, 정신적 함양에 중점을 뒀다. 종사기에는 무술, 말사육, 단체게임 등 신체활동이 주가 되었으며 기사로서 갖춰야 할 군사훈련도 병행되었다. 이러한 교육과정을 통과한 청소년은 21세가 되면 기사로 서임되었다
 
완전히 독립한 기사는 3가지 맹세를 하였다.
1. 신과 군주에서 복종하고, 숙녀에게 봉사하며, 무용과 덕을 쌓아 군주를 위해 투쟁하고 충성할 것임을 맹세한다.
2. 종교적으로 헌신하고, 교회를 수호하며,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자를 보호하며, 불의를 물리치고, 기독교 이상에 따라 종교 의식을 집행할 것을 맹세한다.
3. 무용을 통해 부인을 보호하고,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며, 숙녀를 위해 싸울 것을 맹세한다.
초기 기사 교육은 국가 통치를 위한 고급 인력 확보 및 전사 육성이었으나, 점차 종교적 의무가 반영되었다.
 
평기사의 주된 임무는 전장에서 싸우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평시에도 체육활동을 꾸준히 하여야했다. 체육활동의 목적 및 목표가 자연스럽게 군사적 성격을 띌 수 밖에 없었다. 기사들의 대표적 체육활동은 무예 였다. 사회적 질서유지 및 국가, 교회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전시 상황이 아닐 때 기사들은 다양한 훈련을 받았다. 체육이 금지되어 있던 시기라 오락보다는 모의 전투의 형태를 띈 활동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마상시합이 있다. 마상시합은 40명이 한 팀을 이뤄 상대팀과 겨루는 단체전인 토너먼트, 2명의 기사가 말 위에서 긴 목검으로 결투를 했던 개인전 성격의 쥬스트, 표적이나 모형을 세워두고 창으로 맞추던 퀸테인이 있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중세시대는 체육의 암흑기라 불린다. 그러나 기사교육을 통해 체육의 명백을 이워왔으며, 신체적 발달에만 중점을 두지 않고, 정신적 요소를 중요시 함으로서 근대 스포츠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음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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