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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역사 이야기

종교개혁이 스포츠에 미친 영향

by 라떼몽몽몽 2022.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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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중세에서 근대로 변화면서 맞이하게 된 가장 큰 사건은 종교개혁이다. 이 과정에서 문명의 변환이 발생했다. 마틴 루터와 장 칼뱅이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폈다. 이들의 주도로 시작된 종교개혁은 도덕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초기 신교에서는 성경이 지니고 있는 진리와 개인의 권리를 중요시 하였다. 그러나 교리의 잘못된 해석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했으며, 보수적 성향을 드러내면서 내부의 분열이 발생했다. 이때 루터파, 칼뱅파 등 다양한 종파가 발생했다. 이렇게 발생한 종파들은 독일 북부지역 및 스칸디나비아 제국으로 퍼져나갔다. 칼뱅파의 경우 스위스에서 시작되어 프랑스,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영국 등으로 번져나갔다. 이때 발생한 종파가 청교도파, 장로파 이다. 칼뱅파의 가장 핵심 교리는 예정설 이다. 예정설이란 '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이 있기 때문이 아니고, 인간이 있기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 으로 신에 의존하지 않는 합리적 생활을 강조했다. 칼뱅파에서는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근면성실하게 노동하고, 사치와 낭비를 줄이는 것이 중요시 되었다. 이렇게 칼뱅파가 확산되어 영국의 헨리 8세는 국교회 (잉글랜드 성공회) 를 설립했는데, 이는 스포츠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종교개혁 시대는 문화적 변화의 격동기였다. 모든 문화, 관습, 교육에서 구교와 신교가 부딪혔다. 

 

가톨릭(구교)의 도덕주의

종교개혁에 반대하던 가톨릭(구교)의 교육자들은 도덕주의를 앞세웠다. 중세시대 부터 이어 내려온 금욕주의 흐름을 없애고, 모든 교육 활동을 도덕 및 정신적 교육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 성직자들은 교육, 전도, 사회봉사 등 여러 분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체육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종교개혁에 반하는 운동을 주도했돈 샤들레토 추기경은 모든 어린이들에게 놀이를 권장했고, 메인테논은 레크레이션 시간을 즐기면서 무용, 달리기 등 신체활동에 적극적 참여를 권장했다. 그러나 가톨릭 학교에서 체육이 공식 교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신교의 금욕주의

신교(프로테스탄트)는 체육 및 스포츠에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루터파의 경우 건강 유지 및 퇴폐적 활동의 감소 등 체육 활동의 긍정적 면모를 인정했다. 그러나 칼뱅파를 지지하던 국가들의 입장은 달랐다. 특히 영국의 청교도는 체육 및 스포츠에 부정적 인식이 강하였다. 노동의 가치를 중요시했던 청교도는 놀이, 게임 등 체육활동을 혐오하고 사회적 활동 범주에서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가톨릭에서 인정한 체육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많은 휴일이 없어져 레크레이션 활동이 축소되었고, 일요일에는 오락을 금지하는 잉글리쉬 선데이가 만들어졌다. 더불어 정신 수양을 통한 도덕성 증진을 위해 체육을 제한하고 묵상과 기도를 권장하였다. 결론적으로 종교개혁은 금욕과 도덕성을 너무나 강조한 탓에 체육 및 스포츠 활동의 발전에 역행하였다.

 

영국왕실의 스포츠 애호

청교도 비율이 가장 높았던 영국에서는 역설적으로 스포츠 애호 기풍이 나타났다.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는 국교회주의를 확립하면서 체육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성공회의 수장 역할을 겸한 왕들이 스포츠를 즐기기 시작하였다. 종교개혁이 발생했던 튜더시대 부터 영국의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 스포츠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급속도로 확대되어 19세기에는 스포츠의 나라 불리게 된다. 이 시기를 스포츠 애호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에도 서민들의 스포츠 활동은 금지되어 있었다. 가장 인기 스포츠였던 테니스의 경우 귀족만 즐길 수 있었으며, 서민들의 참여는 불가능했다. 이러한 배경 탓에 상류층에서는 스포츠 활동이 더욱 활성화 되었다. 이 때 영국에서 즐기던 테니스를 로열 테니스(Royal Tennis)라 불렀는데, 사람의 머리카락 또는 동물의 털을 넣어 만든 가족 볼을 사용했다. 테니스 인기가 높아지자 영국 왕실에서는 프랑스에 테니스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오늘날의 론 테니스 (lawn tennis)가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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