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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역사 이야기

종교개혁시대 가치관의 출동에 부딪힌 체육

by 라떼몽몽몽 2022.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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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시대 구교와 신교가 부딪히면서 체육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이 생성되었다. 구교 내에서도 계파가 갈라졌으며, 신교는 더욱 심했다.
 
구교 (가톨릭) 의 체육에 대한 가치관
구교에서 가장 체육을 중요시 여겼던 지도자는 안토니아노 추기경이였다. 음악가이자 작가이자 변호사이며 사제였던 안토니아노는 어린 아이들이 신체적 단련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사회에 적응해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레크레이션은 노동에 지친 심신을 회복시키고, 이를 통해 다시 사회 구성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각종 놀이 및 게임을 통해 심신을 훈련할 수 있으며, 어린 아이들이 도약, 펜싱, 수렵 등 다양한 체육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된다고 말했다. '올바른 어린이의 양육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집필한 샤틀레토 추기경은 어린이가 놀이에 대한 욕구를 가지는 것이 정상이므로 이를 억압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스페인의 기사인 로율라는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심신을 단련하지 않는 것은 큰 죄이며, 신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신체 및 정신을 유지해야 된다는 가치관을 주장했다.
 
신교의 체육에 대한 가치관
신교에서는 루터파와 칼뱅파가 체육 활동을 다르게 바라 보았다. 루터파체육의 필요성을 인정했으며, 이를 통해 종교를 부흥을 꾀하였다. 루터는 건강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을 중요시했고, 레슬링과 펜싱과 같은 체육 활동을 권장했다. 이와 반대로 극단적 도덕주의를 내세웠던 칼뱅파체육활동을 부정했다. 정당한 규칙이 있는 상태에서 가벼운 게임을 허용했으나, 놀이, 체육활동 등 신체적 활동으로 즐거움을 얻는 것에 반대하였다. 이는 칼뱅파의 핵심 이론이었던 '예정설' 탓이 크다. 칼뱅은 신이 모든 것을 예정해놓았으며, 시민들은 신이 정해준 직업에서 근면성실하게 노동을 하는 것이 기독교인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이라 주장했다. 그렇기에 칼뱅파를 믿었던 청교도들에게 체육 활동은 불순한 것으로 여겨졌다. 
 
유럽의 체육에 대한 가치관
서유럽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의 여파가 북유럽으로 번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치열한 가치관 충돌이 일어났다. 에라스무스는 체육의 목표를 노동자의 양성으로 보았고, 오로지 노동과 관련된 신체 단련만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체육을 통한 신체 외적 아름다움 및 정신적 능력 함양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심신이원론적 관점에서 체육을 바라보며 6세 이상의 아이들이 체육과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며 금욕주의적 주장을 펼쳤다. 반면 영어 외교관이었던 토마스 엘리엇은 체육을 통한 신사의 양성에 관심을 보였다. '통치자'라는 저서를 통해 '최소한의 레크레이션이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을 했으며, 체육 활동이 뒷받침 되지 않은채 공부를 할 경우 건강을 망친다고 경고했다. 엘리엇은 달리기, 사냥을 권장했으며, 레슬링을 통해 위험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수 있음을 알렸다. 특히 체육 활동 중 무용을 통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를 통해 신체적, 정신적 발달을 이룰 수 있다 믿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비서였던 아스캄은 교양 체육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의 저서 '교사'에는 "신사는 품위 유지를 위해 신사에 걸맞은 유희를 즐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유희란 승마, 양궁, 육상, 테니스 등이었다. 아스캄은 양궁에 대한 기술을 톡소필로스 라는 책으로 정리하였는데, 이는 스포츠 기술 및 방법에 관한 최초의 책이다. 이처럼 아스캄은 체육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으며, 가치를 제대로 알아본 지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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