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에 있는 도시국가(Polis) 중 하나였던 스파르타는 뛰어난 상업력과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도시였다. 스파르타는 크게 3개의 인종이 존재했다. 인구의 약 10% 를 차지하며 시민계급을 형성했던 스파르타인, 국민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페리오이코이, 주로 농업에 종사했던 헬로타이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스파르타에서는 특히 체육이 발달되었는데, 이는 스파르타의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주변의 적들로 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 국방력을 강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도시 및 국가적 차원에서 체육활동을 적극 장려 하였다. 또한 체육활동을 통해 존경심, 용맹함, 절제, 복종심 등 군인이 갖춰야 할 덕목들을 갖추게 만들었다.
일찍이 체육의 중요함을 느낀 스파르타는 체계를 갖추어 나갔다. 스파르타의 체육 교육은 어린나이부터 30세까지 실시되었다. 7세부터 국립 공동교육소에서 혹독한 체육 교육을 받아야 했다. 시민들 중 엄격한 감독관 (파이도노무스)을 선출하여 교육을 받았다. 국립 공동교육소 교육을 수료한 모든 소년들은 이라이와 4개의 이라이로 형성된 보아이로 편성되었다. 이라이 내에서 우수한 체육활동을 보인 소년들은 분대장 역할을 맡았다. 중대 개념의 보아이에서는 20대 청년 지도자인 에이렌의 지도를 받았다. 주요 과목은 레슬링, 육상, 경주, 수영 등이었으며, 무용과 음악도 함께 배웠다.
스파르타는 연령별 교육 목표를 정하였다. 12~14세 소년들은 신체적 훈련 주로 받았으며, 이후 18~20세까지를 사관후보생(에페보이, 에페비)을 육성하는 예비 교육기간으로 정하였다. 주로 18세가 되면 에페보이가 되었고, 군사, 무장, 국경 경계 훈련에 참가했다. 20세부터는 조직화된 군사 훈련 및 실제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렇게 30세까지 신체 단련 및 군사 훈련에만 전념해야 했고, 전시에도 신체 단련을 계속 되었다.
스파르타의 신체 단련을 위한 체육 내용은 군사 훈련과 접목한 볼게임을 비롯하여 궁술, 달리기, 레슬링, 권투, 판크라티움 등이었다. 스파르타에서 군사훈련의 의무는 여성도 함께 분담했다. 여성들은 군사무용 등 전시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18세까지 받아야 했다. 이처럼 모든 국민이 꾸준한 신체 활동 및 군사 훈련을 받은 덕분에 스파르타는 현재 우리가 떠올리는 강성한 도시를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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