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스포츠, 체육은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독립전쟁, 남북전쟁을 치르면서 신체활동은 중요하지 않은 요소로 여겨졌다. 이런 영향으로 체육(Physical Education’이라는 단어는 1830년대가 되어서야 사용되었다. 체육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전까지는 주로 신체활동이나 놀이 등으로 불렀지만, 체육 이라는 정확한 용어가 사용되면서 부터 기초 개념이 정립되었다. 정확한 용어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학교에서도 체육이 한 과목을 인정받게 되었는데, 이 과정을 3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1단계 (1850~1899년)는 체육을 단순한 신체활동이 아닌 학문적으로 접근한 기간이다. 이때 체육은 대부분이 체조 중심의 신체활동이었다. 단순한 신체활동에 불과했었지만, 1885년 앤더슨 박사가 ‘미국체육진흥협회 (AAAPE)’를 설립하면서 체육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체육을 학문적으로 파헤치면서 미국 체육 발달의 초석을 다졌다. 더불어 다윈의 진화론이 부상하면서 체육 또한 관심이 증대하였다. 이 시기에 히치콕, 서전트 같은 학자들에 의해 체육 측정평가학이 발전하면서 체육의 과학화가 시작되었다.
2단계 (1900~1920년)는 미국 내 학교 시설의 발전과 맞물려 있다. 1910년대까지 미국의 공립학교에 체육 시설이 확충되었고, 대부분의 주에서 체육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다. 효과적인 교육의 수단으로 체육이 선정된 것이다. 더불어 사회가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이 건강증진 및 질병예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유아부터 고령까지 일생에 걸쳐 체육 활동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생겨났다. 의사들은 체육 활동을 적극 권장함과 동시에 과학의 발전으로 질병 발병의 원인들을 찾아냈다. 이러한 가운데 체육의 교육적 가치는 인정받지 못했고, 오로지 건강 증진의 도구로만 사용되었다. 이에 체육 이론가들이 반기를 들고일어났다. 대표적 이론가인 스탠리홀, 스펜서 등은 ‘놀이이론’을 바탕으로 체육이 효율적 교육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03년에는 강건한 기독교 주의에 바탕을 둔 ‘YMCA’가 설립되면서 잉글리시 선데이가 약화되었다 (*잉글리시 선데이 : 주일 (일요일)에는 스포츠 활동을 금기시하던 청교도주의 전통문화) YMCA는 휴일인 일요일에 더 적극적 스포츠 활동 참여를 권장했고, 이는 애슬레틱 선데이 (Athletic Sunday)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노력으로 체육은 학교와 사회에서 필수 요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3단계 (1921~1930년)는 신체육 시대였다. 이전까지 신체 단련이 중요시되었으나, 개혁기를 거치면서 신체활동을 통한 교육에 포커스를 맞췄다. 진보주의 교육 이론이 등장하면서 신체활동을 통한 교육의 개념도 확장되었다. 단순히 책상에 앉아서 하는 교육만이 정답이 아닌 운동장에서 뛰면서도 충분히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시기였다. 이는 세계 1차 대전 이후부터 사회적으로 퍼져나갔으며, 단순 체육이 아닌 생리학, 심리학 등 다양하게 세분화되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처럼 3단계에 걸쳐 미국 체육이 발전하였고,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로 지속적 변화가 나타났다. 1950년대에는 인간의 움직임을 탐구하는 이론이 발전했으며, 1970년대에는 인간주의 철학에 기반을 두거나, 놀이 교육이론이 등장하는 등 수많은 이론과 함께 미국 체육이 발달하게 되었다.
'스포츠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대올림픽 부활을 이끈 쿠베르텡과 브룩스 (0) | 2023.02.19 |
---|---|
NCAA와 함께 발전한 미국 스포츠 발전 (0) | 2022.10.17 |
중국의 '양토사상논쟁'을 종결시킨 맥클로이 (with_YMCA) (0) | 2022.09.22 |
'투르 드 프랑스'는 프랑스 전통 스포츠 발전의 결과물 (0) | 2022.09.16 |
스웨덴 체조의 아버지 '링' (0) | 2022.09.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