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9년 쿠데타로 집권하게 된 나폴레옹은 유럽 정복에 대한 야심을 품고 있었다. 이를 위해 국가주의 사상을 강조했다. 국가주의적 사상을 통해 권력의 중앙 집권화를 이루고자 했고, 교육 또한 국가에서 주도하였다. 체육 또한 이 과정에서 크게 발달되었다. 초기 프랑스의 체육 역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군사적 목적을 동반하였다. 이 당시 체육이라 불리던 활동은 체조가 유일했다. 군대에서 체조를 의무화 하면서 체조 연맹이 생겨났다.
보불전쟁, 워털루전투 등 큰 전투에서 프랑스가 패할 때마다 체조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경쟁국에 비해 자유로웠던 프랑스 군대는 체계가 필요했다. 마침 스페인에서 넘어온 아모로스 대령이 체조를 전파했다. 체조를 통한 신체 단련 및 체계를 갖추면서 프랑스 군대는 승승장구했고, 이를 통해 전국의 군대 및 학교에 퍼졌다. 프랑스가 처음부터 체조를 받아 들인 것은 아니었다. 스페인에서 넘어온 이방인인 아모로스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공개 체조 시범을 본 프랑스 국방장관이 마음을 고쳐 먹으면서 체조가 도입되었다. 국방장관의 든든한 후원을 등에 업은 아모로스는 야외 체조장을 설립했고, 훈련을 위한 체조를 만들어 군대에 보급하였다. 이를 통해 군대에 체계가 잡혔으며, 단결력도 올라갔다. 아모로스와 더불어 클리아스도 프랑스 체조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로 여겨진다.
체조를 통한 체육활동이 인정받으면서 프랑스의 전통 스포츠도 부흥했다. 이중 가장 전통적 스포츠인 사냥이 크게 발전하였다. 18세기 초까지만 해도 사냥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모든 국민에게 사냥이 허가 되면서 스포츠의 형태로 발전되었다. 19세기에는 2천개가 넘는 사격클럽이 형성되었고, 살아있는 동물보다는 인공적인 표적을 맞추는 스포츠로 변모하면서 더 많은 대중들이 즐기는 스포츠가 되었다.
사이클 또한 프랑스의 대표적 전통 스포츠이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사이클은 1869년 첫 대회를 치루게 된다. 이후 기술이 발전하면서 누구나 쉽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최고 성능을 가진 자전거를 만들기 위한 기업들의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졌다. 기업들은 유럽 내에서 대회를 통해 서로의 기술적 우위를 확인하고 싶어했고, 이는 대중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더 많은 관심과 자본이 집중되면서 1903년 부터 '투르 드 프랑스'라는 세계 최고의 대회가 개최되었고, 현재도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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