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의 정서와 스포츠 휴일활동 의무 참여
북방의 사자라 불리며 북유럽을 호령했던 스웨덴의 위상은 18세기 부터 추락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에게 발트해 동남부 지역을 내줬으며, 나폴레옹의 진격 앞에 남부지역을 통채로 넘겨주었다. 또한 핀란드의 통치권까지 러시아에 빼았기며 국토의 60% 이상을 잃어버렸다. 이처럼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자, 스웨덴 국민 사이에서는 국가주의 정서가 생겨나며 체육에도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의 체육 활동은 대부분 야외활동으로 이루어졌다. 나라의 자연 환경에 맞춰 청소년들은 혹한기 스포츠 휴일 활동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했다. 이 활동은 일주일간 야외에서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며 생존력, 전투력을 향상 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러한 활동을 위해서 많은 돈이 필요했는데, 다양한 후원자들이 국력회복을 위해 나서준 덕분에 저렴한 비용으로 숙박, 식사, 훈련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링의 등장과 왕립중앙체조학교의 설립
청소년들의 체육 활동을 위해서는 지도자 양성도 중요했다. 초기에는 왕실중앙체조학교에서 지도자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왕실중앙체조학교는 군인 양성이 목적이었기에 나중에 군사체육학교와 왕립체조학교로 분리되었다. 분린된 왕립체조학교는 스포츠 체육 전문학교가 되었고, 스웨덴 내 대학에 전문적 지도자 양성 코스가 생겼다. 이처럼 스웨덴에서 체육 및 체조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페르 헨리크 링'의 노력이 있었다. 덴마크 유학을 마치고 스웨덴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된 링은 체조가 건강, 근력, 인격 유지 및 강화에 필수 요소라 생각했다.
그는 스웨덴 정부에 체조학교 설립을 요구했고, 이를 통해 왕립중앙체조학교가 설립되었다.
링의 주도하에 설립된 왕립중앙체조학교에서의 체조는 국가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링의 스웨덴 체조는 심신의 발전이 기본이었으나, 군사적 목적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과학적 원리 및 목적에 따라 병식체조, 의료체조, 교육체조, 미적체조 등 4가지 영역으로 나뉘었다. 이처럼 체조를 목적에 따라 세분화하여 체육의 다양한 확장성을 잘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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